골프를 시작하며 당근마켓도 덩달아 시작하게 됐다.
골프채는 길이가 길어 택배거래가 쉽지 않다. 심지어 골프채를 담을 박스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
때문에 박스를 이어 붙이는 신공을 발휘하기도 했었는데...
1미터가 넘으면 우체국에서는 받아주지 않는다. 결국 화물거래를 해야하는데 배송비더 만만치 않아 당근을 많이 이용하게 됐다.
지난 주
몇 개월 전 샀던 물건이 있었는데 내게는 어울리지 않고 앞으로도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아 5천 원에 물건을 올렸다.
올리자마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해왔고 가장 먼저 연락을 준 분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당근을 하며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경험했다.
약속 장소에 구매자가 나오지 않았다. 연락을 하니 다음 날 다시 오겠단다. '차단'
예약중에서 판매중으로 바꾸니 또 다른 사람이 연락을 해왔다.
다음 날 만나기로 했는데 믿기지 않겠지만 또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두 번 연이어 겪으니 이 물건의 주인은 따로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5천 원 받겠다고 뭐하는 짓인지 싶었다. 그냥 좋은 분에게 나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누가 좋은 분이지?
판매중으로 바꾸니 또 연락이 왔다. 이제는 뭐 덤덤하다.
택배가 되냐고 묻는다. 5천 원짜리 물건을 택배로? 당황스러웠지만 혹시 몰라 동네가 어딘지 물었다.
마침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주말에 그 앞을 지나가는 길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카페를 운영 중인데 오면 커피를 대접한다고 한다. 게다가 5천 원이 아닌 1만 원을 주겠다고 한다.
물건의 주인을 찾은 것 같았다.
그래서 대접해주시는 커피 대신 물건은 나눔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분은 한사코 1만 원을 주겠다고 하신다.
나도 질 수 없어 가격을 나눔으로 수정했다.
그렇게 약속일이 되었다.
물건을 가지고 카페에 방문하니 예상과는 다르게 남성 분이 아닌 여성 분이셨다.
우아한 느낌의 50대 사장님이었고, 카페는 사장님을 닮아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원래는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만 받아서 나오려고 했는데 머그컵에 주셨다. ㅠㅠ
어쩌다 보니 한참 동안 대화를 하게됐고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후 일정이 있어 더는 지체하기 어려운 시점이 되어 이제 일어나야 한다고 하니 집에서 내려 마시라며 원두를 그 자리에서 갈아주신다. 양이 꽤 많다. 너무 감사하고 죄송했지만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원두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까지 나와 잘가라고 배웅해주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운전을 하다 커피 향이 좋아 쇼핑백에서 커피를 꺼내 커피 향을 맡는데 쇼핑백 바닥에 1만 원이 깔려 있었다.
이건 좀 너무 하다 싶어 메시지를 보냈다.
이러시면 어쩌냐고... 이 돈은 쓰지 않고 가족들과 조만간 카페에 방문해 사용하겠다고 했더니
가족들과 오면 그때도 돈은 받지 않겠다고 하신다.
값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따뜻함과 감사함을 선물로 주신 카페 사장님께 이 글을 바친다.